김정운교수 책, 읽었다.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 강의비슷하게 했던 내용이 책에 다 있더라. 쉽고 재미있게 잘 썼더라는. 실체도 없는 허상'때문에' 살고 있다고 믿는 불쌍한 한국남자들에게 진짜 자신을 위해 재밌게 즐기며 살라는 말이렸다.
책을 덮고 갑자기 참을 수 없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좋아하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더라. 영화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아내도 아이들도 좋아하고 부모님도 좋아하고 친구들고 동료들도 좋아하고 라면도 좋아하고 스시도 좋아하지만, 굳이 오타쿠적이라고까지는 아니라도, 남들보다 더 좋아하고 잘알고 잘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이걸 걱정해야하나...
그런데 사실 그런게 문제라는 것이다. 뭔가를 좋아해야한다고 느끼는 자체도 벌써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을 아무도 모르더라도 그게 아무 의미 없어보이는 행동일지라도 정말 아무 평가나 가치판단없이 순수하게 자유롭다면...
Posted by 봄여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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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이 일이 힘들어서만은 아니야. 이 일이 내게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간혹 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해야하기 때문이야"

회사를 그만두고싶은 이유가 뭔지를 후배에게 질문했더니 되려 내게 반문하길래 내가 했던 대답이다. '돈은 버는 것' 이상의 의미는 줄 수 없는 직업을 가진 것이 좀 서글프기도한 아침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이 '공포'. 하고싶은대로 하고, 하기 싫은 거 안하고 아무생각없이 푹 쉬고 놀수도 없는 이 '불안'. my status를 규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되야한다는 '강박'. 이 놈들이 항상 내 머리 왼쪽 뒷통수에 매달려 있다. 그러니 항상 머리가 무겁기도 하고..

도대체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를 모르는 이 비극....
Posted by 봄여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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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살인사건의전말

최대한 스토리 자제하였으나 스포일러 쬐금 있음. 시놉시스생략.
등장인물
-복남, 해원(복남친구), 복남남편, 복남남편동생, 복남남편고모, 복남딸, 동네늙은아줌마들, 동네아주늙은할아버지, 쪼그만배 선장, 다방레지, 순사 외...

이 영화... 내가 뽑은 올 해 최고의 영화를 바꾸게 했다. 단순 명료하게 직선적이면서도 다분히 다중적인 은유와 메시지가 공존하는, 그러면서도 박찬욱이나 김지운의 것처럼 뻔지르르하거나 막무가내는 아닌, 특별한 영화다. 최근 복수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나쁜 놈들이 그냥 밑도 끝도 없이 나쁜 한(a) 놈(male)이라는 것이다. 나쁜 살인마남자가 내 가족(연인)을 죽였으니 당연한 명분으로 복수(살인)를 한다. 복수도 거의 남자가 한다. 최근에는 살인마보다 복수하는 사람들이 더 멋있다(!) 살인(폭력)은 다분히 개인적이며 복수도, 따라서 개인적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곧장 잊는다. 나와 상관없는 살인자와 피해자의 일이므로.

김복남의 복수는 개인적이지 않다. 전체의 구조적 폭력(살인)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다. 그건데 이 '구조적 폭력'이라는 것도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꼭 김복남에게만 가해지는 것이 아니다. 섬은, 서로가 서로에게  (전체가) 폭력적이다. 다만 복남에게만 과도하게 집중될 뿐. 이처럼 한 사람에게 폭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다른 다수가 구원(?)받는 구조는 역사적으로 흔한데 대표적인 예로 서양의 마녀사냥(재판)을 들 수 있다.  지나치게 예쁘거나 특이한 행동을 하는 여자, 시샘이나 오해를 받을 만한 여자는 종종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한다. 이 때 특이한 것은 마녀로 몰린 여자와 가까운 사람(가족, 친구 심지어 남편)들이 오히려 마녀처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짐짓 '나는 절대 마녀와 상관 없는 사람인 것'을 증명한다. 섬의 늙은 아낙들처럼 집단의 폭력이나 독재에 적극 동조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에도 얼마나 많았던가.

복남이 동경해마지않는 '서울'에 사는 유일한 친구 해원은, 졸라 싸가지 없어 보인다. 타인에 대한 동정이나 배려는 눈꼽만치도 없어보인다. 어찌보면 해원 입장에서는 '타인의 고통'따위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복남이 동경해마지않지만 오히려 어떤 의미로는 더 비정한 폭력공화국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해원은 아마도 자기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진짜로 믿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이 시점, 서울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타인이 받는 폭력에 대한 방관, 묵인(다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만...) 또는 참여(결국은 우리 모두 이 수준일지도 모른다)가 선택된 피해자에게 얼마나 끔찍하게 작용하는지를 섬의 복남을 통해 보여준다. 미련하리만치 수모를 당하며 복수의 정당성-죽인다는 사실뿐만아니라 왜 그토록 '낫질'이 잔혹할 필요가 있느냐는-을 축적한 복남은 딸의 죽음을 기화로 복수의 화신으로 뒤바뀐다. 어떤 평론가는 실존주의에서 근거를 찾고 어떤 평론가(여자사람)는 남성을 상징하는 태양을 쳐다보다 그놈과 맞짱뜨겠다는 결단을 했다고 말들하는데, 복수영화가 생각하는 가장 그럴듯한 결단의 순간은 '자식의 상실'이다. 아들딸이 죽었거나, 애인이 죽었는데 임신한 상태거나... 그렇지 않은가? 여튼

섬에 도착한 해원은 처음엔 중립적 관찰자인 것처럼 보인다. 괴기스러운 섬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에게 고통받는 복남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처럼. 하지만 복남이 빡도는 순간, 해원은 이미 섬의 집단적 폭력의 일부가 되어있다. 예의 그 차가운 방관, 묵인 그리고 참여의 방법으로...여전히 '자기는 전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진짜로 믿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섬사람들이 죽는다. 복남이 다 죽인다. 여자고 남자고 다 죽인다. 늙어 정신나간것처럼 보이는 할배만 빼고... 슬래셔무비의 쾌감마저 느껴지는 이 장면들은 영화 보실 분들을 위해 패스.

섬사람이 아닌 해원은 어떻게 될까...

영화를 (돈 내고)두 번 보았다. 처음엔 복남을 주인공으로, 두 번째는 해원을 주인공으로. 아니지. 두 번째는 해원을 '나(춘하부)'로 성전환수술을 시켜서 보았더랬지.

양심이 갈기갈기 찟겨지는 느낌이랄까... 양심이라고 생각했던 거짓들이 씻겨나가고 좁쌀만해진 내 진짜 양심을 확인하는 씁쓸함이랄까...스스로 외면했던 내 양심의 끝을 본 느낌이다. 다른 복수영화와 달리 이 영화가 몇 날 며칠을 두고 나를 괴롭힌 이유다.

 나의 무관심과 외면과 직접 간접적인 폭력으로 고통받은 모든 소수에게 사과드린다.

 

Posted by 봄여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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