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

카테고리 없음 2010. 5. 26. 15:25

아내와 하녀를 봤다.

8.325% 아쉬웠지만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스타일리쉬한 화면과 미장센, 특히 숨죽이게 만드는 섹스씬은 훌륭하다. 캐릭터가 더 강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이정재, 도무지 어떤 캐릭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도연, 어리지만 잘해낸 서우(인가? 요즘 애들 이름이...), 또다른 주인공(하녀)이며 연기선배의 내공을 보여주는 윤여정. 배우들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원작의 하녀와 함께 이렇네 저렇네 말도 많지만... 결론적으로 에로틱은 하고 서스펜스하진 않은 듯하다.

충격적 결말 장면으로 인상깊은 혹성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혹성탈출2를 팀버튼인가가 만들었는데, 1편만큼의 충격적 장면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던가. 결과는 당연히 훨씬 덜 충격적이었지, 아마.

하녀는 원작도 리메이크작도 모두 상승과 추락의 의미를 강조했고 집이라는 공간, 특히 계단이 그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가속을 붙이며 파국으로 치달아야 제 맛인 결말부분이 리메이크하녀에선 그냥 뜬금없이 끝나버린다. 개인적으로 좀 더 파격적인 엔딩을 기대했지만 내가 감독이 아니라...

 

여튼 영화는 자본의 궁극을 누리는 대한민국0.001%와 그런 그들을 부러워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으면서 그럭저럭 빌붙어 사는 우리네와, 이도 저도 상관없이 불쌍하기만한 사람들의 얘기처럼 보인다. 종업원의 아들이, 대한민국에서 한 방으로 신분상승을 상징하는 검사가 되었어도 그저 생활의 에피소드로 여겨질 정도의 권력()을 쥐고 있는 그들. 장모한테 당신 딸 뱃속에서 나와야만 내 자식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말하는, ‘질문은 내가 한다는 그들은 너무나 다른 세상에 따로 존재하는 듯하여 타격이나 전복의 대상이 감히 되질 못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윤여정의 하녀에 애정이 많이 갔는데, 바로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에 헌신하고 복종하며 나름대로 풍족한 댓가를 받고, 주인이 없을 때는 사뭇 그럴듯하게 주인 소파에 누워 와인을 마시는 모습, 주인이 주문한 와인을 조금 덜어 마시며 다른 하녀에게 가져가라고 얘기하는 모습, 그들에 대항하지 말며 돈이나 챙겨가라며 하녀를 다독이는(?)모습, 아니꼽고 더럽고 미치고 치사해도 그들이 없는 곳에서야 욕하며 소리 지르고 마는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자살을 위해 찾아온 하녀를 집에 들이고 나 그만 둔다라고 말하는 것이 최고수준의 저항일 수밖에 없는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전도연의 하녀는 뭔가 불분명하지만 연민의 대상이다. 전작에서처럼 독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저 순진하지만도 않은 모습. 정말 그녀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주인 남자의 아이를 없애기 위해 그토록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그녀를(아이를) 몰아낸 것은 무엇일까. 생명을 내 던져가며 이야기해야하는 절박함과 무력함은 무엇일까. 그녀가 죽는 장면에선 뉴스에서 짤막하게 보도되던 목을 맨 비정규직노동자, 철거민의 분신자살이 오버랩되며 잠깐의 연민을 느끼며 이내 아무 상관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나같은 사람이 대부분인 세상이라 그런가... 상당히 끔직하며 그로데스크하게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저 고장난 TV를 바꾼 듯, 또 다른 부품으로 대체되는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딸아이의 생일잔치가 치러진다.


Posted by 봄여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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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irap.tistory.com에서 5giraffes.tistory.com으로 대문주소 변경. 기린 다섯 마리. 심리검사 받고 상담사가 오지랖이 넓어 할 일 안할 일 모두 신경쓰느라 인생 에너지 다 쓰는 사람이란 지적이 생각난다. 나, 가족, 직장, 사회(국가), 인류...다섯 마리 기린. 그래도 난 모두 포기할 수 없다. 

근데 블로그, 어떻게 꾸미는 거냐???
Posted by 봄여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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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여섯. 늦은 일이다. 이 나이에 블로그를 만든다는 것. 아주 나이가 많거나 아님 아주 어리거나 하면 그럴만하다고 이해되기도 할텐데... 나의 경우는 그저 늦은 것이다. 아는 척, 읽은 척, 사랑하는 척, 이해하는 척, 도와주는 척, 잘하는 척...
그러나 다행이다. 그러는 척하는 동안 외로운 척은 덜하게 되었으니.

막상 만들고 나니 뭔 소리를 해야할 지 막연하지만, 그건 내 맘이고 서툴러도 그 뿐이라 상관 없다. 내가 재미있으면 그만이리라. 샐러리맨은 졸라 바쁘다
Posted by 봄여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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